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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방

말을 위한 기도

by 慧明花 2024. 5. 2.

 

 

♣ 말을 위한 기도 / 타고르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괜히 두렵습니다.

 

더러는 다른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잖은 열매를 맺게 했을 언어의 나무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과장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하여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나날이 깨어있는 마음, 새로운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소서.

 

♥♥♥

 

 

 

푸른 오월 / 노천명

 

청자(靑磁) 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이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 속으로 몰려드는 향수(鄕愁)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컹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데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 납 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시집 <창변>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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