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해인사 지족암에 주석하는 향적스님은 법회 때마다 신도들과 선시(禪詩)를 읊는다. 선(禪)이란 흐르는대로 마음을 맡기고 자재한 생명을 드러내는 것. ‘아간운산(我看雲山 역망아(亦忘我).’ 구름과 산을 보다가 나까지 잊어버리는 경계, ‘그렇게 나를 잊어버린다면 그 무엇이 나의 자유를 구속하겠는가.’ 향적스님은 이 땅에 불조혜명을 밝힌 선사들의 깨달음의 경계가 고스란히 깃든 선시들을 암송하면서 잠시나마 풍진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곤 한다.

  
향적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해인사 지족암은 외로움마저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 감돈다.

향적스님에 따르면 선시야말로 선사의 정신적 사리이자, 언어의 근원이다. 선시는 존재의 음성에 순종하며 존재에게 언어를 구하는 지극히 성스러운 작업이다. 그 언어로부터 존재의 진리가 확연히 드러난다.

존재의 언어는 우리에게 물리적인 소리로 다가오는게 아니라, 오직 ‘나직한 고요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는 ‘존재와 무’를 초월해 ‘색즉시공’의 경계를 노니는 선사들의 깨달음의 깊이를 일컫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향적스님의 은사 일타스님(1929~1999)의 오도송이 책의 첫 장을 연다.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開門花笑來)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光明滿天地)’ 1956년 3월22일 이른아침, 태백산 도솔암에서 정진하던 일타스님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홀연히 돈오하고 법희선열 속에서 읊조린 게송이다.

제자는 스승이 생전에 들려줬던 말을 떠올린다. “선방 앞 화단에 조그마한 목단 꽃봉오리를 보고 들어가 입선 죽비를 치고 방석에 앉았는데 눈을 뜨고 방문을 열고 나오니 목단 꽃이 활짝 피어 미소지으며 달려왔다”고.

해인사 지족암 법회 때마다 신도들과 함께 읊은 禪詩

역대 선지식들의 시 100여 편…향적스님 특유 섬세한 해설

시인 정휴스님 직접 감수

깨달음의 정서로 풀어놓은 선적 통찰력 돋보여 ‘극찬’

선사들의 남다른 구도행도 선시마다 오롯이 새겨져 있다. 청매 인오스님(1548~1623)의 시에서 노래한 ‘눈 쌓인 빈 뜰에 떨어진 붉은 잎’을 해설함에, 향적스님은 해인사에 소장된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를 꺼내놓았다.

소림사 달마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한 중국 선종의 2대조인 혜가스님이 “너의 믿음을 바치라”는 달마스님 앞에서 칼로 왼팔을 잘라버리자 땅에서 파초잎이 솟아나 잘린 팔을 고이 받들었다는 일화. 선종이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법을 계승한 이 명장면엔 구법을 향한 혜가스님의 의지가 묻어있다.

팔이 잘려 눈 위에 피가 흐르는 모습을 ‘눈 쌓인 빈 뜰에 붉은 잎이 떨어진다(雪滿空庭落葉紅)’고 묘사한 청매스님이야말로 선시의 시성(詩聖)이라고 향적스님은 해석했다.

진각 혜심스님(1178~1234)의 선시에 이해인 수녀의 시를 접목시킨 스님의 안목은 압권이다.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를 달이는 밤(北斗星河煮夜茶) 차 끓는 연기가 달의 계수나무를 감싸네.(茶煙冷鎖月中桂)’

향적스님은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를 달인다’는 진각 혜심스님의 표현은 지족암에서 맞이하는 한여름밤의 정경과 절묘하게 일치한다고 하면서 이해인 수녀의 시 ‘별을 보며’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별을 보면/ 반짝이는 기쁨이/ 내 마음의 하늘에도/ 쏟아져 내립니다….’

스님도 수녀도 비움을 통해서 초극의 경계에 들고, 그리하여 대상으로 존재하던 ‘타자’들과 하나가 된다. 향적스님은 특히나 혜심스님의 시는 시상이 선명하고 필력이 빼어나 한국 선시 가운데 가장 유려한 작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송광사 16국사 중 한사람, 원감 충지스님(1226~1292)의 선시에서 향적스님은 ‘활구선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평했다. ‘깊은 봄날 깊어가고 찾아오는 이 없어(春深日永人事絶) 바람에 배꽃이 날리니 뜰에 가득 흰 눈이 쌓이네.(風打梨花滿庭雪)…’

향적스님은 세간 국회의장격인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맡고 있어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편이다. 한동안 도시에서 머물다가 산사로 돌아갔을 때 스님은 고적함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 스님이 말하는 고적함은 단순히 외로움이 아니다.

외로움마저도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수많은 선지식들이 읊조린 선시의 세계에서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조차도 마음밭의 거름이 되듯, 향적스님 역시 고적하고 적요한 가야산 한 암자에서 ‘뒷짐 지고 걸으면서 시흥에 젖어’ 살고 있는 듯 하다.

  
향적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법보시용 비매품으로 엮어 신도들끼리 보려고 시작한 작업이 한권의 시집으로 여법하게 나왔다. 스님의 선시해설집에는 100여편의 주옥같은 선시들이 향적스님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안목으로 그려져 있다. 1980년대 초 ‘전설의 사보’ <해인>지를 창간한 초대 편집장이자, 지난 2007년까지 4년여간 <불교신문> 사장을 맡아 직필정론에 앞장섰던 스님답다.

향적스님은 서산스님(1520~1604)의 선시를 소개하면서 <선가귀감>을 펼쳐들었다.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만 따르고, 수행자는 마음만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둘 다 내버리는 것이 참된 법이다.’ 향적스님은 “둘 다 내버리는 경지를 일컬어 ‘양망(兩忘)’이라고 한다”며 “둘 다 버린 후에야 안팎으로 걸림이 없게 된다는 것을 서산스님은 일깨워주고 있다”고 전했다.

향적스님의 이번 책은 시인이자 다선 종회의원을 역임한 정휴스님이 감수를 맡았다. 감수를 마친 정휴스님은 “오랜 수행을 통해 얻은 값진 체험과 깊은 사색으로 걸러낸 언어, 그리고 깨달음의 정서로 풀어놓은 선적 통찰력들이 비우고 내려놓아야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고 극찬했다.

  
지족암. 불교신문자료사진

■ 향적스님이 꼽아준 선시

죽음이란, 구름 한 장 사라지는 것

종회의장 향적스님의 선시해설집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에는 100여편의 선시가 실려 있다. 해인사 지족암에서 봉행되는 법회 때마다 법문에 얹혀 읊어줬던 선시들이다. 3년 전부터 모아온 선시와 시해설은 선향이 무르익어 향적스님의 오랜 수행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향적스님은 이 책에서 임종게 열반송과 같은 죽음을 노래한 선시 몇 수를 손꼽아 외고 있었다.

삶이 초저녁 풋잠처럼 허망한 것이라면 죽음에 관해 함허 득통스님(1376~1433)은 이렇게 읊었다. ‘삶이란 구름 한 장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구름 한 장 사라지는 것/ 뜬구름 본시 그저 빈 것이니/ 이 몸이 나고 죽음 다를 것 없네/ 그 중에 신령한 그 무엇하나/ 언제나 길이길이 맑아있나니…’ 이에 향적스님은 ‘신령한 그 무엇’을 꼭 집어 ‘진여(眞如)’라고 설명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서산 청허스님(1520~1604)의 임종게는 걸림없는 수행자의 삶과 사상을 단박에 보여준다. ‘천가지 계략과 만가지 생각/ 붉은 화로 위에 내리는 한 송이 흰 눈이네/ 진흙소가 물 위로 가니/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네.’ 향적스님은 비단같은 게송 위에 꽃과 같은 해설을 달았다. “삶의 영욕만큼 무상한 것도 없다. 그러니 천가지 계략도, 만가지 생각도 실은 붉은 화로 위에 내리는 한송이 흰 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산스님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바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그 뒷면에 이렇게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결국 서산스님에게는 80년 전에도 80년 후에도 자타의 경계가 없는 자유인일 뿐이었다.”

대혜 종고스님(1089~1163)의 선시는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향적스님은 이 시를 들여다보면서 종교인으로서 지녀야 할 죽음에 대한 철학에 대해 ‘여(如)’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대혜스님의 이 마지막 시에는 ‘여’라는 글자가 세차례 나온다. ‘이 세상에 온 것도 이와 같더니(來也如是)/ 이 세상에 떠나는 것도 이와 같구나(去也如是)/ 오고감이 한결같아(來去一如)/ 맑은 바람이 만리에 부는구나(淸風萬里).’

향적스님은 말한다. “한결같이 살면 되는 것이다. 한결같이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떠난 자리에도 청풍은 만리까지 불 테니까.”

[불교신문2999호/2014년4월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