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동화 / 이어령
밤길을 가는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뒤를 쫓아온다.
딱딱이 소리도 없는데 야경꾼인가 보다.
훔친 것도 없는데 냅다 도망친다. 담을 넘고 개천을 건너 정신없이 뛴다. 도망치는 내 속도와 같은
속도로 계속 날 쫓아온다. 잡으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숨이 멎을 때까지 계속
달리다 벌판에 이른다. 추수가 끝났나 보다. 아무것도 없는 밭인 지 논인지 휑한 벌판 이젠 자유다.
하지만 숨이 차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
뒤쫓던 야경꾼을 향해서 묻는다.
"누구냐!"
"나다."
달밤에 그런 놀이를 했었지. 내 그림자와 단둘이서 놀다가 더 이상 뛰지 못하고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면 달이 떠 있었지! 달빛이 너무 밝아 별들은 보이지 않았지!
"너 누구냐!"
"나다."
그 자리에 쓰러져 하늘을 본다. 달도 별도 없다.
2019,10,29, 아침
* 사뮈엘 베케트의 표절을 조금 해서 써셨지만 이어령 님의 이 글은
우리 인생 일대기를 전부 일괄해 놓은 듯 명작이다. 야경꾼은 삶이요
누가 뒤 쫓지 않는데 허우적거리며 냅다 달려 더 이상 뛰지 못하고
하늘을 보니 달도 별도 없음을... 누가 그랬다죠,
마지막 말을 쓰지 말라했지만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동화는...
삼복더위 잘 이겨내자요. 가신 선생님의 주옥글 다시 보며...(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