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시방

거위를 따라 갔던 밤

by 慧明花 2018. 9. 26.




깜깜해서 손을 잡고 걸었지요

발소리는 둘밖에 없어서


돌멩이 같은 마음으로도


손을 감싼 손은 참 컸지요

계절을 깜빡 잊어버리기가 좋았지요


밤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기분

유일한 기분

하나둘 벗어던지는 기분


키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손과 손은 어떻게든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악력만 있다면


밤을 쓰다듬어며

넓적한 것은 펄럭였지요


같이 날아올라보는 거야


날개였을까

날개를 펴서 더 어둡게 만들었던

것일까


가리는 것이었을까


발을 굴렸던 것도 같습니다


넓적한 것이 쓰다듬을 때

뺨은 펄럭였어요


바람이 좋았다고요


세상이 밝아오면 안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어떻게 막을 수 있나요

그 날개 하나로


베었는지 몰랐어요

빛이 스며들기 전까지는요


얼굴이 뒤죽박죽이지 뭐예요

축축한 날개 한쪽으로 머리를 덮어

주고 있더라니까요


그때에도 거위는 눈알을 떼룩떼룩

굴리고 있더라니까요

뻑뻑하게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났어요


굳게 닫힌 부리를 믿었었나 봐요


형평문학상 이원시집

[사랑은 탄생하라]

촉석루 월간에서 펌


<

'영상시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오면  (0) 2018.10.05
사랑은 손에 쥔 모래와 같다  (0) 2018.09.27
지나간 것은 모두 추억이 된다  (0) 2018.09.16
내 인생의 아름다운 가을을 위해  (0) 2018.09.13
지란지교를 꿈꾸며  (0) 201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