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꽃의 사랑
인동초 꽃!!
보기만해도 가슴이 미여집니다
나,어릴적,우물가에 물을 길러 가는길
담장에 이쁘게 핀 인동초꽃을
한소쿠리 따다가요
찌짐을 부쳐 먹었답니다
부드럽구 향기로운 맛이 지금도
입안 가득 돕니다
아침 출근 후,
잠시 짬을 내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요
함께 보시어요,^^*
인동덩굴의 옛 이름은 겨우살이넌출이다. 겨울을 살아서 넘어가는 덩굴이란 뜻이니 생태적인 특성에 딱 맞는 이름이다. 인동덩굴은 제주도에서부터 중부지방에 걸쳐 만날 수 있고, 비교적 따뜻한 곳을 좋아하며 약간 수분이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길가나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남쪽지방에서는 겨울에도 거의 잎을 달고 있으나 북쪽 지방으로 올라갈수록 잎 일부가 남아서 반상록(半常綠) 상태로 겨울을 넘긴다. 그만큼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잘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이다.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중국을 고향으로 하는 인동덩굴은 유럽과 미국에도 진출했다.
고향땅에서의 인동덩굴 대접은 각별했다. 우선 약용식물로서는 보정강장제에서부터 이뇨제까지 두루 쓰였다. 《동의보감》에는 “오한이 나면서 몸이 붓는 것과 발진이나 혈변에 쓰며 오시(五尸)를 치료한다”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정조 10년(1785)에 앓아누운 세자에게 인동차를 올려 세자의 피부에 열이 시원하게 식고 반점도 상쾌하게 사라졌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순조 14년(1813)에는 의관이 임금을 진찰하고 “다리에 약간 부기가 있는 듯하므로 인동차를 드시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인동차는 단순히 마시는 차가 아니라 왕실에서 애용한 약용 차였다. 그 외에 줄기와 잎, 혹은 꽃을 말려 술에 넣어 만든 인동주도 좋은 약술로서 즐겨 마셨다.
또 다른 이용 예는 덩굴이 비꼬여 뻗어나가는 모양을 문양으로 형상화한 당초문(唐草紋)의 모델 식물이 바로 인동덩굴이다. 주요 옛 건축물은 물론 벽화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인동덩굴은 예부터 무늬 모델로 널리 쓰였다. 고구려 강서대묘의 천장 굄돌과 발해의 도자기 그림을 비롯하여 와당(瓦當), 백제 무령왕의 관식(冠飾), 천마총의 천마도 둘레에도 역시 인동무늬가 들어 있다.
《산림경제》에 보면 “이 풀은 등나무처럼 덩굴져 나고, 고목을 감고 올라간다. 왼쪽으로 감아 나무에 붙으므로 좌전등이라 한다. 또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기 때문에 인동이라 한다”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흔히 풀로 알았고, 지금도 인동초(忍冬草)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굵은 나무줄기의 인동덩굴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니 풀이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실제로 인동덩굴은 Z나선(螺線), 즉 오른쪽으로 감는 것이 보통이며, 드물게 S나선, 즉 왼쪽으로 감는 것이 있다고 한다. 왼쪽감기 인동덩굴을 더 좋은 약재로 생각하여 따로 좌전등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무의 세계 1 / 백과에서 퍼옴
한국 전역의 숲가·구릉지 또는 인가 주변에서 자란다.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 길이가 3m에 이른다. 잎은 넓은 피침형 또는 난형으로 마주나며 끝은 둔하다. 꽃은 6~7월경에 피는데, 꽃잎은 처음에는 흰색이지만 곧 노란색으로 변한다. 꽃잎 안쪽에는 굽은 털이 있고,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인동과 겨우살이덩굴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줄기가 마르지 않고 겨울을 견디어내 봄에 다시 새순을 내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금은화란 이름은 흰꽃과 노란꽃이 한꺼번에 달리기 때문에 붙여졌다. 흔히 인동초라고도 불린다.
한방과 민간에서 잎과 꽃을 이뇨제·해독제·건위제·해열제·소염제·지혈제로 쓰며 구토·감기·임질·관절통 등에 사용한다. 주요성분으로 루테올린 이노시톨과 타닌 성분이 있다. (다음백과)
어릴적
또 생각나요
인동초꽃을 한닢따서
뒷꽁지를 쪽 빨면
달달한 꿀맛요,
ㅎ
울 님들!
저처럼 추억 계신죠?
오늘 아침!
그 시절이 참 그리웠습니다.